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일종의 쇼(show)를 하는 것은 이제 별로 낯설지 않다. 전시 오프닝 행사로 미술가가 퍼포먼스를 한다든지, 아니면 실험적인 무용가가 춤을 춘다든지 하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995년에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행사로는 대동장승굿, 터 벌임굿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한국식 퍼포먼스인 셈이다. 언제부터 미술가가 쇼를 하게되었는가? 미술가가 그림은 그리지 않고 춤을 춰도 되는 걸까? 사실 말이 춤이지 해프닝이나 퍼포먼스라 부르는 미술가의 행위예술은 괴상망측하거나 엽기적인 일련의 행동들인 경우가 많다. 슈니만의 1964년 퍼포먼스 <Meat Joy>엔 생선, 닭고기, 물감, 종이, 플라스틱, 소시지 위에서 뒹구는 벌거벗은 젊은 남녀들이 등장한다. 그 퍼포먼스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즐겁거나(joyful) 에로틱하기보다는 역겨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미술가와 무용가, 그리고 음악가, 연극인이 공동 작업을 하고, 더 중요하게는 미술가가 자신의 본업인 회화나 조각을 탈피하여 해프닝이나 이벤트를 보여주는 것은 현대 아방가르드 미술의 주요 현상중 하나다. 장르 간 경계 허물기는 닫혀진 체계로서 기왕의 예술개념을 일탈하려는 욕구의 표명이다. 이제 음악, 연극, 무용과 섞이지 않은 미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시도는 과거지사가 되었다. 더욱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은 "순수하기보다는 잡종적이고 깨끗하기보다는 타협적이고 명확하기보다는 애매하다."
하지만 현대 퍼포먼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예술형식은 모더니즘이 무르익던 20세기초에 이미 등장했다. 1924년의 <휴연>은 다다 퍼포먼스 중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피카비아, 에릭 사티, 만 레이, 뒤샹 같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상연일인 11월 27일 주연 무용수가 병이 나자 주최측은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하고 극장문밖에 '휴연(Relache)'이란 푯말을 내걸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런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다이스트들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공교롭게 <휴연>이란 제목을 얻은 공연은 12월 3일 다시 열렸고, 아주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작품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독립적인 이벤트들로 구성되었다. 만 레이는 무대 앞에서 돌아다니면서 마루의 길이를 재고, 소방수 차림의 다른 사람은 이 물통 저 물통으로 물을 옮겨담았다. 뒤편의 발레리나들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추는 가운데, 가끔씩 스포트라이트가 나체의 연기자들을 비추고 지나가곤 했는데, 그중 아담역으로 등장했던 사람이 바로 뒤샹이었다.

현대 퍼포먼스의 출발은 존 케이지의 영향하에 발생한 플럭서스 해프닝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백남준과 오노 요꼬, 요셉 보이스가 참여했던 플럭서스 그룹은 예술과 일상의 통합을 꾀하고 우연성, 부조리, 유희성, 관객과의 소통을 추구한 데 있어서 다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얼마전 시내에서 열렸던 <Yes Yoko Ono> 전에선 오노의 유명한 퍼포먼스 <Cut Piece>가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오노는 무대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고 관객들은 차례로 올라가 오노의 옷을 원하는 만큼 잘라간다. 잘려지는 옷자락은 마치 오노의 신체의 일부처럼 보였고, 나신이 점점 더 드러남에 따라 그녀의 표정은 더욱 처연해졌다. <Cut Piece>는 1964년부터 66년까지 오노 자신에 의해 다섯 차례 공연되었고,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남성중심 사회의 폭력성, 가학성을 드러내는 페미니즘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2003년 9월 22일 ; 경희대 대학신문에 연재한 <현대미술이야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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