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끄 아노의 <연인>을 다시 보고 film/media


우연히 케이블에서 장 자끄 아노의 <연인>(1992)을 해주길래 오랫만에 다시 봤다.  물론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보지 않았을거다.

십수년만에 다시 본 영화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내 기억속의 <연인>은 중절모를 쓴 소녀의 매력, 침대 위 두 남녀의 벗은 몸을 수직으로 내려다 보며 찍은 샷, 무력하고 절망에 빠진 남자의 아편질, 그리고 아주 긴 여운이 남았던 소녀의 뒤늦게 깨달은 사랑, 그녀의 통곡이었다.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던 이런 장면들은 의외로 아주 짧게 스쳐지나갔다. 제인 마치는 그때처럼 신선하지 않았지만, 양가휘의 프로파일은 여전히 멋졌다. 그리고 새로이 눈과 귀에 들어온 사실... 그들의 사랑을 방해했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빈털터리 프랑스인들이 갑부집 아들 중국인을 경멸한다. 소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은 그녀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가 미개한 중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왜 그때는 그런 '중요한' 것이 전혀 인식되지 않았을까? [* 그때는 포콜이나 문화정치학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반대로, 젊고 부유하고 핸섬한 중국 남성이 예쁘지만 가난한, 그래서 사랑대신 매춘을 꿈꿨던 소녀를 사랑한 이유는 그녀가 백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본 <연인>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졌고, 놓쳤던 어떤 장면이 새로 눈에 들어왔던지 간에, (소녀 마르그리트는 애써 부인했었지만) 어린 날의 사랑을 되돌아보며 아파하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감수성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나 마찬가지로 절절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2007. 4. 1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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